평생교회
  • 누가복음
  • 계시록의 칠복
  • 주제설교
  • 야고보서 명예 회복
  • 성경공부
  • 전도서
  • 주기도문
  • 천지창조
  • 창세기_완결
  • 잠언 속 풀이
  • 믿음의 본질
  • 성경인물
  • Sunday school
  • 만만한 복음
  • 공지사항
  • 자유게시판
  • 평생사진
  • 인사말
  • 섬기는 이들
  • 예배시간
  • 오시는 길

성경인물  @ 5libuin

14.-이스라엘이-된-야곱
14. 이스라엘이 된 야곱
막 사냥하고 돌아와 시장해 죽겠다는 형을 상대로 팥죽 한 그릇을 미끼로 장자 명분을 기어이 얻어 내는 것도  보기 그랬지만 아무리 어머니의 각본이라 해도 형으로 가장해 아버지에게 들어가 축복의 기도를 대신 가로채는  것도 믿음의 조상의 후예로 모양새가 영 나질 않는다. 얼추 계산해 봐도 그의 나이 70은 족히 넘었을 것이고 그 나이면 평생을 제 식대로 살다 가도 철들어 돌이킬  나이인데 그 이름의 뜻처럼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선 움켜쥐고 보는 방식에 전혀 불편함이 없는 것을 보면  복은 원하되 복 주시는 이가 기뻐하시는 삶은 관심 밖인 것이 틀림없다. 그런 그의 본심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음에도 속이는 자 야곱을 먼저 찾아오신 하나님은 오히려 그와 그의 자손을  축복하실 것을 약속하시며 영원히 그의 하나님이 되실 것을 언약하신다.        20년 동안이나 성실히 섬겼건만 여전히 자신을 속이는 삼춘 라반이 야곱의 재산이 늘어가자 마음이 예전 같지  않음을 보고 그를 피하여 도망치는 야곱은 오래 전 가슴속에 가둬 둔 ‘속임’의 법칙을 다시 시작한다.  급히 뒤를 쫓아 온 라반은 하늘이 도와 운 좋게 돌아갔지만 고향이 가까이 올수록 목을 조여오는 에서의  칼날 앞에서 그가 할 수 있는 방법이란 또다시 모두를 속이는 것. 동생이 마치 형에게 선물을 보내는 것처럼  속이고, 오랜 친척이 문안을 드리는 것처럼 속이고, 당장 눈 앞에 다가올 죽음 앞에 자신의 아내를 속이고  핏줄을 속이고…… 이제 더 이상 그 방법이 통하지 않는 자리, 얍복 나루에 홀로 남겨진다.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 하지만 그거야 부모가 자식에게 일부러 져주는 것임을 이기는 자식이나 져주는 부모나  다 아는 것. 그래도 끝까지 부모 이겨 먹
  • 5libuin
  • 5년 전
  • 102
13.-리브가
13. 리브가
  아브라함의 하인 엘리에셀이 몰고 온 낙타를 겁도 없이 그것도 열 마리씩이나 다 챙기겠다고 자기 몸뚱이 만한  물동이를 이고 지고 할 때 알아 봤어야 했다.  한 녀석이 서너 동이의 물을 먹는다 치면 못해도 40번 이상은  왔다 갔다 물을 길어 와야 했을 것 인데 싫은 내색 하나 없는 것이 보통내기는   아니지 싶었다. 게다가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남자와 결혼하겠다며 태어나 한번도 떠나 본 적이 없는 고향을 그것도 언제 다시  와 볼 수 있을 지도 모르면서 종을 선뜻 따라 나서는 그 두둑한 배포 하며. 나이 마흔이 다 되도록 여자보다 엄마에 더 익숙한 남자 이삭. 모친상 이후 3년이 지나도록 깊은 상실감과 슬픔에 헤매던 그와의 만남은 남편 이삭에게는 위로요, 리브가에게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으로부터 받는 격려였다.  부족하기는커녕 차고 넘침에도 불구하고 별 하는 일 없이 자연을 묵상한다든지 인생을 음미하는 그의 풍류가  그녀의 비위를 슬슬 거슬리기 시작한 것은 우물 때문이었다.  유목민 생활에 물이 얼마나 중요한가…. 겨우 자리 잡아 놓으면 여기서 나타나 쫓아내고 저리로 밀려나면 또 달려들고. 그러기를 몇 번을 반복해도 그저  자리 피하기로 일관하는 남편 이삭을 보면서 성질 급한 사람이 우물 판다고 이 나마 잘 유지하기 위해서 라도  그저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점점 조급해졌으리라. 거칠고 용감한 큰 아들 에서를 좋아하는 남편과 달리 좀 약삭빠르긴 해도 제 것을 잘 챙기는 작은 아들 야곱에게  마음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연로한 남편의 축복의 기도를 얻어 내기 위해 리브가는 눈 어두운 남편과  장남 에서를 속이기로 작정하고 야곱과 함께 실행에 옮긴다.   어쩌
  • 5libuin
  • 5년 전
  • 86
12.-롯
12. 롯
  소돔 아닌 소돔의 세상에 살면서 물 만난 고기처럼 신나게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건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며 입속말 하며 사는 사람이 있다. 같은 곳에 있어도, 같은 것을 먹어도, 제 세상 만난 듯 어떤 이는 체질이라며  좋아 죽는다 하고 어떤 이는 괴로워 죽겠다 한다. 가족이며 식솔들을 잔뜩 거느리고 열심히 자리 잡고 살다가  하루 아침에 방 빼고 정리하고 나오기가 어디 쉬운가…… 그러다 보니 살 맛 하나 없이 죽을 맛으로 산다 한다.   당시의 소돔 사람들은 노아 때에 그랬던 것처럼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또 심을 거 심고 집을 지었다. (눅17:28) 주워 들은 소돔의 문란함을 빼고 라면 그렇게 사는 것이 무슨 문제냐 하겠지만 사람의 삶은 그의 가치관, 그의 어떠함을 그대로 드러내기 마련  아니겠는가! 나, 내 것, 내 소유, 내 욕구, 이런 것에 대한 집착이 눈 앞의 현실에  안주하게 하는 것은 물론이요, 자신들이 있는 그 터전의 주인이요 창조주인 하나님을 인식하며 산다는 것은 기대할 수 없었을 터, 하나님 없이도 얼마든지 살 수 있다는 생각이 이미 자리 잡아 있기 때문에 굳이 그를 두려워할 필요  없이  잘 살았다는 말이다. 그런데 롯은 소돔 성에 살면서 ‘저들의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으며 그 의로운 심령이 상했다’한다.  물론 어릴 때부터 노아 할아버지 얘기며 홍수사건을 들어 왔을 터이고 그 기억들은 유년 주일 학교에서 배운 공과 공부처럼 그의 뇌리 어느 한쪽에 자리 잡아 그렇게 쉽게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니 마음이 그리 편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성경은 그의 의로운 심령에 근거가 될만한 단서를 제공하기 보다는 오히려 그 말에 반격할 만한 남 부끄러
  • 5libuin
  • 5년 전
  • 81
11.-이삭
11. 이삭
하늘의 뭇 별과 같이 자손이 많이 질 거라는 약속을 이어 받을량이면 어서 빨리 짝을 만나 하루가 멀다 하고  자손을 번식해도 모자랄 판에 결혼 적령기를 훨씬 넘어 어쩌면 자식을 낳아도 여럿 낳았을 나이까지  그는  화려한 솔로였다.  노아처럼 홍수를 대비해 방주를 짓는 다든지 아니면 누구처럼 지팡이를 들었더니 바다가 갈라진 다든지 하는 건  아니라고 쳐도 그렇게 특별한 부모의 후광을 힘입어 출생부터 남달랐던 인생답게 뭔가 극적인 것이 있으면  좋으련만 극적인 것은 고사하고 심하게 평범한 것이 지루할 정도다.   그는 한때 하나님께 복을 받아 백배나 수확을 얻는 농사로 창대하고 왕성하여 거부가 되기도 하지만 (창26:12)  사는 게 만만치 않은 것이 기껏  우물을 파 자리 잡을라 치면 싸우자 달려들고 그게 싫어 피해 또 다른 우물을 파면 또 쫓아와 싸우자며 시비하는 이도 많았다. (창26:20)  요즘 말로 하자면, 잘 믿는 부모의 잘 믿는 자제는  늘 하는 일이 잘되고 어떤 재앙도 피해가니 만사가 형통이요 병도 안 들어 무사태평, 만수무강 해야 하는데  그는 어쩐 일인지 남들 겪는 거 못 피하고 다 겪으며 살았다는 말이다. 어디 그 뿐인가! 아무리 자식은 겉 낳는  거지 속 낳은 것이 아니라 지만 그 믿음 좋은 집안에서 난 아들이 이방 여자 데려다 며느리 삼으라며  속을 썩이질 않나 또 한 아들은 어미랑 작당을 하고 아비며 형을 속이고 도망을 가서 20년 가까이 얼굴 한번 못 보고 살지를 않나…. 게다가 자신은 눈이 어두울 만치 병약하여 자리 보존하기를 그 아들 돌아올 때까지 계속하니  그 세월을 산 이삭의 말년은 입에 올리기에도 너무 조촐하다. 하지만 성경은 이 지극히 평범한 사람 이삭의 삶이
  • 5libuin
  • 5년 전
  • 26
10.-하갈
10. 하갈
오랫동안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주인 사라 앞에서 보란 듯이 임신을 한 하갈은 자신의 일신이  더 이상 전과 같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족장 사회의 가부장 제도에서 자식의 의미가 얼마나  대단한 것이며 늙은 아브라함은 얼마나 자식을 기다려 왔던가!  그녀가 아무리 일개 여종이라 해도  자신에게 떨어진 복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이것을 절대 모를 리 없는 바 자신이 생각해도 정말  기특한 일을 해 냈다는 생각에 스스로 우쭐해 지곤 하는 마음을 더 이상 감추기 어려웠다.   조금씩 배가 불러 오자 하갈의 욕망은 더욱 고개를 쳐 든다.  ‘내가 이제는 더 이상 수종 드는 여종이 아니질 않는가!  당대의 거부 아브라함의 뒤를 이어  이 모든 것의 주인이 될 아이를 낳을 여자인데 나이 많고 제 몫도 못하는 사라 앞에서 더 이상  자신을 낮출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자 하갈은 드러내놓고 사라를 멸시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결국 도망가는 쪽은 하갈.  자신이 여종인지 주인인지 분별이 어두운 하갈과 자신의 기능이나  역할 수행과 상관없이 자신이 누구이며 자신의 자리가 어디인지 분명하게 아는 당당한 여주인  사라의 싸움은 시작부터 무모했으며 이미 결론이 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종이 재산인 시대에 도망한  계집종은 죽은 목숨과 진배없는 법. 살겠다고 도망한 황량한 광야에서 헤매다 다시 돌아온 종을 받아  주었건만 근본부터 비틀어 진 건지 하갈의 마음은 성경 어느 한 줄, 은혜 입음에 대한 자각이 없다.   얼마나 조심 없이 그 속내를 드러냈으면 그녀의 어린 아들이 그 성정을 그대로 이어 받았을까….   고운 짓을 해도 절반일 판에 나이 100세에 기적같이 낳은 늦둥이 이삭을 다 큰 이스마엘이 괴롭히고  있으니
  • 5libuin
  • 5년 전
  • 50
9.-사라의-법,-하나님의-법.
9. 사라의 법, 하나님의 법.
한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넘치는 아내의 미모 때문에 자신의 목숨이 위태롭다며 어디서든 자신을 오라비로 부르라는 남편도 그렇지만 그런 치사하고도 일방적인 처사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던 그녀의 속내는 여간 해서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순순히 남편의 뜻을 따르는 것처럼 보이던 사래가 아이를 밴 하갈이 자신을 멸시한다고 느꼈을 때 남편을 몰아 세우던 드센 모습이란 황당하기 그지 없다.   자신이 아이가 없는 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이 주지 않아서 라며 하나님을 탓하더니 이제는 계집종 하갈에게서 아이를 낳으라 한 이가 다름 아닌 자신임에도 아이 밴 여종의 방자함에 대해 오히려 남편에게 책임을 묻고 있지 않은가…. (창16:2.5)   근심하던 나머지 ‘그대의 눈에 좋은 대로 행하라’며 남편의 허락이 떨어지자 사라는 그의 핏줄을 잉태한 여종을 더 이상 버티지 못해 도망쳐 나갈 만큼 그녀를 학대한다. 도적떼와 짐승이 우글대는 사막에 홀몸도 아닌 여자를 내 몬다는 것은 가서 죽으라는 소리와 매한가지 임에도 불구하고 한치 망설임이 없는 것을 보면 그 사고의 바탕에 무엇이 있을까 궁금하기 까지 하다. 시대적 사고에 근거하여 두 여자의 입장을 굳이 따져본다면 사실 내 쫓겨야 할 이는 여종 하갈이 아니고 사라 자신 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불임인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은 고사하고 오히려 자기 인생이 불편해 졌다며 저지른 자가 수습 하라고 남편을 타박한다. 하나님 일은 하나님 일, 당신 일은 당신 일, 해가며 삶을 정리 감독하는 사라. 그런 그녀가 하나님도 아무 말 못하게 한 건지 아니면 사라 자신이 들을 수 없는 건지, 자신에게서 두 번이나 내쫓긴 여종 하갈도 역경 중에 하나님을 만나 겁도 없
  • 5libuin
  • 5년 전
  • 29
8.-선물로-받은-믿음---아브라함
8. 선물로 받은 믿음 - 아브라함
아브라함 생애는 보면 볼수록 이것이 그의 얘긴지 아니면 하나님의 이야기인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처음 부르심을 입었을 때부터 아들 이삭의 얘기까지, 자기 앞의 삶을 향해 가는 아브라함과 세월이 갈수록  그의 삶에 더 깊이 뿌리내리는 하나님의 열심, 또 그와 맺었던 언약을 일방적으로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처음 갈대아 우르 아브람에게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네가 축복의 근원이 되리라.’ 하시며  그 땅에서 이끌어 내신 분도 하나님이셨고 조카 롯을 떠나 보낸 후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하는 아브람에게 ‘동서남북 보이는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시며 땅에 대한 소망을 처음 일으킨 분도 하나님이셨다.  10년이 거의 다되어 ‘그게 꿈이었나 생시였나 그걸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제 기억마저 더듬어야 할 때  다시 말씀을 시작하신 이도 속 답답한 아브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셨다 자신의 종 엘리에셀이 유업을 물려 받을 것이라는 아브람에게, 굳이 그의 몸에서 날 자가 유업을 이을 거라며  마음을 돌려 놓으신 하나님은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던 그의 기대와 달리 침묵의 벽 뒤로 오랫동안  몸을 숨기신다.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욥23:8) 15년 만에 다시 나타나신 하나님은 아브라함이라는 새 이름을 주시며 내년 이 맘 때에 네 핏줄을 안을 것이라는  말씀으로 그의 인생을 다시 움직이신다. 어떤 이해라던가 설명이라던가 이런 것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그러니까 인간으로서 모든 희망과 가능성을 다 접을 수 밖에 없는 100세의 나이, 하나님은 약속으로 낳은  아이  이삭을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주신다. 모든 것을 약속하셨지만
  • 5libuin
  • 5년 전
  • 34
  • 1
  • 2
  • 3
  • 4
  • 5